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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N 칼럼] 여행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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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N 강세희 기자 marketing@gtn.co.kr
- 게시됨 : 2016-05-30 오전 8: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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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라 하기엔 너무나 과분한 예쁜 두 아이가 있다.
이 아이들 덕에 특별히 잘 한 일도 없는데 자동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200점짜리 여자가 됐다.
별다른 임상실험을 한 것도 아니고, 비슷한 음식과 환경 속에서 열 달 씩 품었는데, 두 아이의 기질이 너무나 다르다. 외모는 누가 봐도 대번 남매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녀석이 쌍둥이처럼 닮았는데 성격은 극과 극이다.
더불어 누가 누구의 유전자 성분을 더 많이 함유했는지도 딱 봐 알겠다. 원래 배우자는 본인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난다더니, 막연히 여러 모로 잘 맞는 것 같아 결혼을 했는데, 근 십년을 같이 살아도 아직까지 소주 좋아하는 것 외에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부부싸움의 원인은 늘 이 기질차이 때문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보면 더욱 그 차이가 분명해 진다.
어린 아이를 둔 가정의 해외여행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비행시간은 6시간 안쪽, 괜찮은 수영장이 있을 것, 너무 많이 걷는 일정은 곤란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갔던 곳은 필리핀 세부. 피지관광청 대표직을 13년이나 지낸 덕에 휴양지는 출장으로 좀 다녀 봤다. 그러니 내 돈 써서 가는 여행은 좀 다른 분위기였으면 좋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이제는 괌과 사이판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개성 강한 두 아이와 함께 오르는 해외 여행길은 내겐 휴가도 여행도 아니지만 나름 재밌다. 고생스럽지만 기대가 크다. 한국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과 남편의 새로운 기질을 발견하게 되니까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여행할 권리>라는 책에서 여행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여권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생각난다.
여권이 신분증이라 하기엔 너무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영문이름과 여권번호, 생년월일, 여권 발급 날짜, 발급 지역 외에 별 다른 정보가 없으니까. 영문 스펠 하나만 달라도 전혀 다른 사람이 돼 버린다. 나처럼 개명을 한 사람은 시스템 상 완벽히 다른 사람이 돼버린 거다.
아이들과 여행을 오를 때도 늘 그런 기분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백지상태로 만나는 사람들과 그 곳의 풍경. 아이들을 꽤 오랜 시간 지켜봤고,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나도 발견하지 못한, 구석구석 숨어있을 그 ‘아이다움’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좋은 수영장과 맛있는 음식, 편안한 잠자리는 국내 호텔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여행이란 것 자체가 가장 편한 집을 두고 돈과 시간을 들여 불편함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내가 아는 자리에 내가 원하는 용도로 놓여있질 않다.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며 여행을 떠난다. 내가 나고 자란, 내 편한 대로 세팅이 된 환경을 떠나, 내가 누군지만 식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들고 낯선 곳으로 향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자 용기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는 정말 ‘나다움’, ‘너다움’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가려고하는 것은 익숙함 속에 살다보니 아직 발견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면을 만날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그 동안 공부한 걸 시험 보듯 분명히 알아차리게 될 테니까.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른다. 기저귀를 차고 기어 다니던 때가 까마득하고, 그 때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사진으로만 확인 할 수 있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아이들과 더 자주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의 정보로 사진 속의 그가 바로 나 임을 증명하며 공항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리셋이 되고, 불편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어리바리 행동이 느려지고, 생각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그 와중에 진짜 ‘나다움’을 보이고, ‘너다움’을 보게 된다.입 아프게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 더 말해 뭐하겠느냐만,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버리기 전에 좀 더 자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든다. 이 글을 빨리 끝내고 상품 검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박재아
사모아관광청 대표
daisyparkkorea@gmail.com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광고홍보전공 (석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유럽지역학 전공 (석사)
·피지명예총영사관 GM
·주한 피지정부관광청 대표
·주한 피지정부 관광청 지사장(현)
·사모아관광청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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