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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전용필사장] 단체 많을때는 항공사 세일즈 직원도 인솔자로 나서
항공사와 여행사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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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N 류동근 기자 marketing@gtn.co.kr
- 게시됨 : 2016-07-21 오후 7:36:00 | 업데이트됨 : 6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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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공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던 80년대 초, 항공사 세일즈맨들 사이의 경쟁은 엄청나게 치열했다. 특히, 국적항공사로는 대한항공이 전부였고 대부분 외항사들 이다보니 도쿄나 홍콩, 방콕 등을 경유하는 노선들이 많아 유독 외항사 세일즈의 경쟁이 심했다.
72년 5월 세방여행에 입사한 후 75년 5월 처음으로 해외에 갈 기회가 생겼다. 당시 싱가포르항공이 취항을 준비하면서 22명 여행사 실무 간부급들을 초청, 싱가포르에 공식 일정 후 태국, 홍콩을 경유해 귀국하는 일정이었으며, 지금도 그 당시 팸투어를 했던 참가자들이 성우회라는 이름으로 계속 모임을 갖고 있다.
단체업무 수속 및 해외여행 경험을 계기로 77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솔자로 많이 나가게 됐고 그러다보니 45년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 몇 개국 빼고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해 봤다.
여행사 수가 몇 개 되지 않았고 70년대 중반부터 외국항공사들이 잇따라 취항하다보니 팸투어도 봇물을 이뤘다. 싱가포르항공을 비롯해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JAL항공, 영국항공 등의 세일즈맨들이 더욱 적극적이었다.
지금은 관광청이나 여행사 등 여러 군데에서 팸 투어를 주최하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항공사들이 직접 팸투어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방여행의 경우 특히 단체가 많다보니, 세일즈맨들이 경쟁이 치열하였고, 세방여행을 출입하는 항공사 세일즈맨들은 오너인 故오세중회장이 고려대출신 이다보니, 주로 고대출신이 세일즈맨으로 출입을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대한항공의 세일즈맨은 최종광씨였으며, 이분만 유일하게 고려대 출신이 아닌 세방의 세일즈로 활동을 하였다. 이후 이두식 사장, 故 이휘동 지점장, 정판식 이란 ? 이집트항공 사장 등이 세일즈로 활동하면서 세방여행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세일즈맨들의 하루는 단순했다. 우선 이들 세일즈맨들은 회사에서 얼굴도장만 찍고 아예 세방여행으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퇴근 후 담당자들과 술자리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단체가 많은 때에는 항공사 세일즈맨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솔자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에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항공사 세일즈맨은 인솔역할도 하면서 물량도 가져가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어디 인솔뿐이던가. 카운터업무도 항공사 세일즈맨들이 배웠다. 당시 세방여행 카운터는 오세중 회장께서 이대 영문과출신 이상이 아니면 채용을 하지 않았다. 최하 숙대 학력을 뽑았는데, 당시 카운터 실장이 차진도씨였으며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었다.
항공관련업무 서류가 다 영어로 되어 있다 보니, 영어를 유창하게 하던 차실장이 항공권 발권업무를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으며, 아마 대한민국 카운터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한항공이나 외항사 세일즈맨들이 차실장에게 카운터 업무를 배웠으며 그러다보니 당시 항공사 세일즈맨들은 여행사 직원보다 업무지식이 부족해 어려운 경우도 발생하곤 했다.
차실장은 세방을 퇴사한 이후 아메리칸항공 지점장을 거쳐 은퇴하여 현재는 항공업계를 떠났으며 현재 모두투어 우종웅 회장을 비롯한 항공업계 출신들과 가까운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당시 항공사와 여행사와의 관계는 수요와 공급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여행사가 비교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 아닌, 정으로 똘똘 뭉친 관계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항공사 세일즈맨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즉, 끈끈한 정(情)이 있었기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옛 추억들이 아른아른 거린다.
<류동근 국장> dongkeun@g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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