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이다.

111년만의 살인적 폭염에 지구가 병들고 대지가 메마르고 바다나 땅할 것 없이 고온에 지쳐만 간다. 연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벌써 며칠째던가. 이 또한 2018년 여름이 남긴 흔적이다.

흔적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모든 사람이 제각기 다르게 가진 지문, 어떤 공간을 지난 후 남는 자취와 채취, 음식을 먹고 난 후의 식사흔적, 무언가를 사용하고 만졌을 때 남는 얼룩이나 자국도 우리가 살아가며 남기는 흔적이다.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다.’ 스티브잡스의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이 본인만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 권력서열이 높은 곳에서 명예를 가졌다고 세상에 흔적을 제대로 남기는 것은 아니다.

포털사이트에는 과거의 흔적을 대신 깨끗하게 지워준다는 업체들의 파워링크가 수두룩하다. 일명 ‘디지털장의사’다. 흔적지우기는 연예계나 정치계에서 활발히 일어난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들도 많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해도 뜨기 전인 새벽거리에서 환경미화원들은 어제의 흔적들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호텔에서 일하는 룸 메이드 역시 낯선 이방인의 흔적을 치우고 새로운 이방인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를 보낸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에게 지나온 삶의 흔적은 그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가혹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

삶의 흔적은 남기기는 쉬울지 몰라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감추고 싶은 흔적은 더욱 그렇다. 참으로 두려운 흔적이다. 근래에 본인의 잘못된 흔적으로 자신이 쌓아온 모든 명예와 권력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미투 사건들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본인이 남기는 수많은 흔적이 결국에는 ‘나’를 나타내고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규정짓게 하는 유의미함으로 전환된다. 흔적 위에 흔적을 덧칠해 가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 곧 흔적이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흔적이고 살아가는 것, 사랑과 이별, 죽음조차 흔적이지 않은가. 고대문물의 유적으로 과거 조상들의 삶을 유추해내고 여권에 찍힌 각 국가의 도장은 여행 이후의 흔적을 만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다름없다. 돈, 권력, 지식,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기 일쑤다.

나 자신과 주변인의 삶, 나아가 사회와 인류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흔적을 남겨야할 것이다. 좋지 않은 흔적들 위에 좋은 흔적들을 하나씩 심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걸어가는 우리들의 삶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고 희망이 되고 꿈이 되기를 희망한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내심 기다려진다.

하얗게 쌓인 눈길위에 내가 가는 길, 또는 누군가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천천히 흔적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