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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4호 2025년 10월 13 일
  • [기고] 정희용 러브어스투어 대표의 자전소설 날개

    1. 원대한 꿈을 안고



  • 고성원 기자 |
    입력 : 2016-11-03 | 업데이트됨 : 4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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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정희용 러브어스투어 대표가 그간 랜드업을 이끌어오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 <날개>를 소개했다. 현재 정희용 대표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러브어스투어는 태국 전 지역 및 라오스, 기타 동남아 지역의 인센티브 전문 랜드다. 또한 정희용 대표는 현재 랜드연합체 랜드공감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본지는 총 8회에 걸쳐 정희용 대표의 <날개> 기고문을 연재할 계획이다.
<고성원 기자>

 

글 싣는 순서
1. 원대한 꿈을 안고
2. 도전
3. 추억으로 넘기기엔
4. 정신 바짝 차리자
5. 겸손과 인생
6. 서글픔
7. 푸른 바다와 파도가 되어
8. 영원한 날개     

 

80만원 들고 방콕행

 

 에디터 사진

 

약 30 여 년 전 대학 선배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가이드를 한다는 소리를 얼핏 들을 때만해도 난 그저 남의 이야기로, 혹은 ‘어떻게 외국에서 가이드를 하지? 참 멋지고 재밌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 선배가 나오면 다들 얼굴을 보러 모였다.


가이드 일을 해서인지 선배의 대화 기법이나 좌중을 압도하는 특유의 화술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고, 노래 또한 잘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난 군대를 제대하고 해외영업부에 취직하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데, 대학 2학년 때 하계 현장 실습을 다녔던 모 국내여행사와 인연이 닿아 면접 후 별 어려움 없이 취직했다. 그곳에서 재밌게 약 2년간을 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선배 한명이 나더러 방콕에서 가이드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당시 현지여행사에서 가이드모집을 하고 있어 서울사무소를 소개시켜 줬다. 마침 그 당시는 해외여행 자율화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제안을 받는 순간 먼저 가이드를 하던 선배가 떠올랐다. 당시 난 근무하던 국내여행사도 신경 쓰이고, 때마침 막 피어나던 연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했다.


처음 나가보는 해외, 그리고 거기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의 생활. 그러나 그런 걱정은 잠시였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컸는지 며칠 안에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US$1000(당시 한화 약80만원)을 가지고 타이항공을 타고 갔다.


그날은 1989년 4월14일. 나에겐 역사적인 날이다.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는 타이항공의 보라색 승무원 복장 색깔을 보며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후끈한 더위를 몰고 돈무앙 공항을 빠져나와 현지 여행사 사장님의 벤츠에 올라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송크란 축제 기간이었다. 초저녁이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물을 뿌리고 복잡한 도로에 사람들이 엉켜져있었다.


난 그냥 묵묵히 있었다. 군대로 치면 자대에 배치 받아 숙소로 이동하는 신병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항에서부터 스쿰빗 도로까지 가면서 괜히 거창하게 ‘나도 나중에 태국에서 여행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이드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했지만 그냥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착 첫날부터 사장님은 나를 짐만 풀게 하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야간에는 여행사 인솔자와의 멤버클럽에 데려갔다. 생각해보니 짐을 풀었던 여행사 5층이 가이드 단체 숙소였다. 사장님과 함께한 모임에서 우리 회사 가이드라고 하는 선배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의 방콕 가이드생활이 시작됐다.


방콕 가이드 생활은 한마디로 너무 재밌었다. 사무실에 낯선 타이 아가씨 2~3명과 가정부, 그리고 남자 직원들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잠도 재워주고, 태국 여자 선생님이 오셔서 가이드 초보자들에게 무료로 태국어도 가르쳐줬다. 또 밤에는 경력이 많은 소위 고참 가이드가 술도 사주고, 26세의 나에게는 정말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나날들이었다. 물론 가이드실 청소를 담당으로 하고, 고참 가이드에게 깍듯한 대우 등은 기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3개월 이상이 지나야 여러 가지로 정착을 하는데 난 1달 만에 약간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날 배운 태국어는 꼭 상황을 만들어 써먹는 버릇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바로 언어를 활용하기에는 적잖은 자기 투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방콕에 도착한 첫날, 여행사 인솔자를 만나러 사장님과 같이 간 그 멤버클럽에서 우리 회사 고참 중 한명이 나더러 달러 가진 것 좀 빌려달라고 해서 주었다. 일단 $400만 빌려 달라고 해서 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받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자기투자가 절실했던 가이드 초기 시절, $500이 채 남아있지 않았지만, 매일 밤을 회사근처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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