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원대한 꿈을 안고
2. 도전
3. 추억으로 넘기기엔
4. 정신 바짝 차리자
5. 겸손과 인생
6. 서글픔
7. 푸른 바다와 파도가 되어
8. 영원한 날개
‘허니문의 왕자·노래하는 가이드’ 아싸니 정
어느날 우리 회사 부장님이 그랬다.
“너 외국까지 와서 기껏 술집만 다닐 거냐고. 한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네가 뭐하면서 다니는 거냐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하지만 장가도 안간 젊은 나로서는, 그 시절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고 자위하며 태국 생활에 좋은 경험과 추억을 남겨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M에게.
지금 ‘에브리 브라더스’의 올 아이 해브 투 두 이즈 드림(All I Have To Do Is Dream)이 흐르고 있다. 먼저 방콕에서 가이드활동을 하던 그 선배가 어느 날 현지 여행사를 차렸고, 난 두말없이 그 회사로 옮겼다. 그 선배와 형수, 특히 형수가 좋아하는 그 노래를 나도 같이 듣고 있다. 클로스터비어를 마시면서.
난 회사를 옮긴 후 그 선배집의 남는 방에서 숙식을 제공받았고, 장가가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가이드 생활에 전념했다. 한 번 더 이 자리를 빌어 그 선배에게 다 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태국과의 인연이 재미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방콕 입국한날도 4월14일, 결혼한날도 그 이듬해인 1990년 4월14일이란 점이다.
결혼 후 태국에 가서 신나는 허니문 여행을 즐겨볼 요량으로 한국에서의 별다른 신혼여행을 못간 것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결혼식 후 며칠정도 양가 부모님 댁에 머물다 방콕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이드 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결국은 신혼여행다운 여행을 못 갔기 때문이다. 그 후 몇 개월 뒤 모 여행사의 VIP 손님 두 분이 오셔서 회사에 허락을 맡고 내가 안내하는 봉고 차량에 손님 두 분과 맨 뒤에 집사람 혼자 앉고, 투어를 진행했다. 당시 차량의 기사 옆 좌석에 한국인 가이드가 앉아서 마이크로 안내를 하던 시절이다.
일단 어떻게든 방콕 파타야 코스를 집사람에게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던 마음이라, 뒤에서라도 내 설명을 듣고 차창 밖으로 구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새삼 가슴이 시려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하여튼 다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안내하는 내 설명을 듣고 집사람이 쇼핑센터마다 물건들을 다 사고 있었다. 물론 손님 두 분들도 구입을 하고 있는데 막상 집사람이 산다고 했을 때, 당시 나로서도 약간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싸니 정(Assanee Jeong)! 이게 바로 내 닉네임이다. 외국에서 생활하면 흔히들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나에게 붙여진 이름이 아싸니 정이다.
다른 이들처럼 토니, 찰리, 아님 피터라든지 등등 영어 닉네임이 많았지만, 내 이름은 태국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 당시 태국에서는 ‘아싸니&와싼’이라는 형제 가수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태국 친구들이 아싸니 같이 노래를 제법 한다고 붙여준 이름이다.
흔한 영어 닉네임이 아니라 ‘아싸니 정’이란 내 닉네임이 좋았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으로, 나는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특히 허니문 손님들을 안내할 때 설명할 멘트가 부족해지면 마이크를 잡고 설명 대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노래부터 만화영화주제가 메들리, 산울림노래,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열창하던 조용필 노래 등. 실제로 내가 가이드생활을 마칠 때 즈음 난 태국에서 ‘노래하는 가이드’, ‘허니문의 왕자’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헝남회’, ‘클럽 파타야’등은 내가 가이드 안내를 했던 신혼부부들의 모임 이름들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 신혼부부들을 최소 3쌍에서 최대 10쌍 이상씩 봉고차량 및 대형버스에 태우고 안내를 했다.
신혼부부 안내 시 항상 카세트테이프를 준비해갔다. 특히 ‘원더풀 투나잇 언체인드 멜로디’ 그리고 한국 노래로는 ‘별들의 고향’같이 좀 느끼한 멘트가 나오는 그러한 곡들로 준비를 했다. 허니문 안내 차량에서 테이프를 틀 때면 항상 반응이 좋았다. 이에 태국 비디오기사도 차량에 동행해 차량 내에서도 음악에 맞는 상황극을 연출하며 비디오로 담고, 사원 및 유적지 앞에서는 양가 부모님께 드리고픈 말을 하라고 시켜 나름대로 예의범절까지 유도한 비디오를 제작 판매를 했다. 산호섬 해변가에서의 영화 같은 연출과 농눅빌리지 호숫가 가든에서 삼류영화의 낭만스러운 사랑의 포옹씬은 지금도 여러 가이드들에게 회자되곤 한다.
이렇게 허니문 안내부터 까다로운 단체팀들까지 맡아 가이드 생활을 순항하며, 우리 회사 거래처들에게 가이드 지명을 받으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됐다. 공항에서 안내를 맡은 손님들이 나오면서 나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이미 팀컬러가 파악되면서부터 내 마음도 거만해지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