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원대한 꿈을 안고
2. 도전
3. 추억으로 넘기기엔
4. 정신 바짝 차리자
5. 겸손과 인생
6. 서글픔
7. 푸른 바다의 파도가 되어
8. 영원한 날개
그분을 떠나보내며
살다보면 기분이 이상한 날이 있다.
밤 열두시가 넘어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큰누나에게 온 전화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으니, 빨리 부천에 있는 순천향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집사람과 나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그 와중에 푸켓으로 전화를 걸어 당일 들어가는 허니문 팀 상황을 체크하고 혹시 모를 나의 상황을 얘기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은 후에야 눈물을 흘렸다.
“이런 제길. 업무가 뭐라고 일단 현지 상황 체크 먼저 다하고 나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다니...”
2012년 7월1일 새벽녘의 일이었다. 부천으로 가는 길이 지금도 멈춰져 있는 것만 같다.
7월1일은 일요일이었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타인의 일 같았다. 남들처럼 정해진 절차를 밟아 7월3일 현충원에 안장했다. 우리 아버님은 충무 무공 훈장을 받으신 분이었다. 화장을 한 후 동작동 현충원으로 안치하던 날, 사실 난 그전에 괴성을 지르며 무척 흐느꼈다. 첫날 둘째 날도 참았던 울음을 그제야 터트린 것이다. 그때야 아버지가 나의 정신적인 지주였음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너무 어렵고 무섭게만 생각했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나는 두 아들, 딸을 두면서도 아버지처럼 하지 않으려고 자유분방하게 키웠다. 집사람도 옆에서 울었다. 유난히도 내 집사람을 우리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흰 머리핀에 까만 상복이 카메라의 흔들리는 조명 따라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잔상에 남는다.
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 없어 화장을 하고 돌아온 그날, 난 아버지께 시를 하나 썼다.
“그분을 떠나보내며”
사랑한단 말을 못했습니다.
그저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기에
그저 나에겐 커다란 산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그때는 버거워 피하는 길이 최상이라 느꼈기에
오늘 나는...
많이 후회 했어도, 아직까지 또 후회합니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바보같이 만들었을까요?
울먹이는 가슴을 쓸어내려 봐도 소용없습니다.
흐르는 눈물로 보상을 받으려 해도 위선이었습니다.
한줌의 뽀얀 재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 끝났다 생각해도
그래도 면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보 같은 나는 그분을 떠나보내는 그 당시까지
결국 사랑한단 말을 못했습니다.
아.버.지.
충남 서산에 선산이 있다. 그곳에 아버지 유품을 묻으면서 이 시와 함께 내 마음도 묻었다.
“아버지 지금은 제 마음 아시죠?”
벌써 2016년도 다 지나고 2017년도가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 때문에 일을 했을까? 어느 영화의 한 대사처럼 ‘무엇이 중헐까?’ 요즘 너도나도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헤매고 있진 않았을까. 나는 이것이 옳고 그르다 생각해도, 타인은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좋은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세월은 그 자리에 더 머물 수도 있다. 그러려면 내가 더 힘찬 비상의 날개를 펴야하겠구나. 꺾이지 않는 날개를, 접히지 않는 날개를... 방콕 입성할 때 돈 $1000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니 훌륭한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달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