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선하
피치항공 대표
출근길에 두꺼운 패딩으로 중무장한 사람들로 전철 안은 북새통을 이뤄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는 방글라데시가 부러울 지경이다. 전철 안은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로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친밀해도(?) 되나 싶게 몸이 부대낀다.
열기를 뒤로 하고 지하철역을 나오니 거리에는 혼자서 출근하는 승용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유난히 바깥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진다.
퇴근길, 청계천에는 크리스마스 축제로 아름다운 전식이 빛을 발하고 있고 다정하게 연인들이 연신 인생 샷을 위해 셀카를 찍고 있다. 그 위로 올라오면 영풍문고 앞에서 오늘도 힘이 없어 보이는 남자가 혼자서 ‘빅이슈’를 팔고 있다. 하루에 얼마나 팔릴까?
주말마다 도심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거칠게 내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옆에 차량통제로 인해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거리를 지나간다.
과연 침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일까? 소수의 거친 주장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광교 건널목에 신호등이 있다. 좁은 1차선 도로라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간다. ‘바쁘기 때문에 그렇겠지’라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규칙을 지키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신호등 위에 CCTV가 달려 단속을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약점인 것이다.
올해 우리 사회는 공정의 문제와 불평등의 심화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현상일 뿐이고 올해는 더 불거져 나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공정과 불평등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 가장 많이 기득권들이 주장해서 들었던 ‘법과 원칙’은 사라진지 오래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 돼 ‘내로남불’이 생활화됐다.
생활 속에서 작은 약속과 규칙을 안 지키고 무시하고 나의 편함을 위해 상대방은 불편해도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서 국가의 통치와 정치를 논하면서 공정을 얘기한다는 것이 좀 그렇지 않은가?
불평등을 좀 개선하자고 외치는 거리의 작은 외침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주장하고 지키는 데는 핏발을 세우는 이들이 주장하는 ‘법과 원칙’은 도대체 어떤 나라의 것일까?
우리 모두는 분노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중심이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불편하다. 나의 안정과 취향을 깨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모든 것이 상대방 탓인 것이 내면화돼 있다.
우리는 공정과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상대방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것은 인간의 ‘죄성과 탐욕’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의 삶이 어렵고 고쳐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2019년을 보내며 대다수의 업계 분들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한 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빨리 올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은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먼 훗날 2019년을 기억하며 깊은 상처의 기억으로 남지 않고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